[한의진료] 대한여한의사회가 ‘트라우마 인폼드 케어(TIC, Trauma-Informed Care)’ 원칙에 기반한 한의진료 지침과 심리검사 플랫폼 활용법을 통해 피해자가 존중받는 환경 속에서 회복할 수 있도록 한의학적 접근과 실제적인 지원 방안을 공유했다.
대한여한의사회(회장 박소연)는 최근 ‘성폭력 피해자 진료봉사사업 온라인 워크숍’을 열고, 성폭력 피해자 진료에 나서는 전국 한의사들에게 안전한 치료와 세심한 배려의 중요성을 전달했다.
박소연 회장은 인사말에서 “성폭력 피해자는 안전한 치료와 존중 속에서 회복해야 한다”면서 “이번 설명회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한의사의 역할을 함께 고민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로, 트라우마 인폼드 케어 원칙을 기반으로 한 한의학적 접근은 환자의 몸과 마음을 함께 살피는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현재 여한의사회는 마자렐로센터, 여성가족재단, 청년재단 등과 협약을 체결하고, 의료 접근성이 취약한 대상에 대한 지원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성폭력은 물론 젠더폭력, 가정폭력 등 다양한 트라우마에 대해 한의학적 전문성을 바탕으로 피해자 곁에서 든든한 동반자가 되도록 교육과 지원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설명회에선 △성폭력 피해자 진료 시 유의사항(김윤나 학술이사) △한의진료 시 활용가눙한 심리검사 데이터 플랫폼 한의사 매뉴얼(이채은 의무이사) △성폭력 피해자 중심 진료를 위한 성폭력의 이해(조하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공동대표)를 주제로 발표가 진행됐다.
TIC 핵심 원칙 기반 전인적 접근법 제시
김윤나 학술이사는 트라우마 인폼드 케어(TIC, Trauma-Informed Care) 원칙을 중심으로 한의 진료 지침을 소개했다.
김 이사는 트라우마의 신체·심리적 기전에 대해 “뇌의 변연계가 지속적으로 위협을 감지하는 상태로, 안전하다고 인식되는 ‘인내 창’이 좁아진 상황”이라면서 “이로 인해 환자가 작은 자극에도 과도한 반응을 보일 수 있으므로, 환자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범위를 확인하고, 그 안에서 치료를 확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의치료는 신체적 접근을 통해 정신적 안정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며, PTSD 등은 장기간 지속될 수 있어 초기 진료에서 완치를 기대하기보다 치료 접근의 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TIC 핵심 원칙인 △안전 확보 △신뢰 형성 △지원 체계 마련 △기관 협력과 환자 참여 △환자 권한 강화 △문화적 감수성 고려를 기반으로 한 실제 지침도 제시됐다. 구체적으로는 △조용한 진료 공간 제공 △상담사 동행 허용 △반복 질문 금지 △공감적 태도 유지 △비밀 보장 △진료 절차 사전 안내 등이 포함됐다.
김 이사는 법적 문서 발급과 객관적 의무기록 작성의 중요성도 강조하며 “경험을 부정하거나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경우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의료진은 환자의 선택권과 통제권을 존중하고, 안전한 환경과 맞춤형 치료 속도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 학술이사는 “한의학의 전인적 접근은 신체와 정신 모두에 영향을 주어 트라우마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으며, 환자의 회복과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성폭력 트라우마 한의치료 효과, 데이터로 구축
이어진 발표에서 이채은 의무이사는 심리검사 데이터 플랫폼 ‘닥터앤유’에서 한의사 활용 매뉴얼을 소개했다.
여한의사회는 올해부터 트라우마 한의진료의 편의를 도모하고, 유효성을 보여줄 수 있는 데이터 축적하고자 온라인 심리검사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채은 이사에 따르면 플랫폼은 회원가입과 전문가·사업자 인증을 거쳐 한의원 단위로 심리검사를 발급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개인정보 보호와 원내 진료 효율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발급 가능한 검사는 △심리반응 △사건충격척도 △신체 증상 선별도구 △건강상태 효용 추정 △지각된 스트레스 척도 등 5종이며, 검사 완료 후 한의사는 △결과 확인 △요약 인쇄 △PDF 저장 △보고서 이관 △환자 상태 비교 등의 기능을 활용할 수 있다.
이 이사는 “플랫폼 시스템을 통해 환자들에게는 맞춤형 진료를, 한의사에게는 표준화된 근거 기반 진료 도구를 제공할 수 있다”면서 “나아가 한의학적 트라우마 진료가 국가적·국제적 차원에서 공신력 있는 데이터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피해자 목소리 청취와 지지는 치료의 시작”
조하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공동대표는 “성폭력 피해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만연한 현실”이라며 “‘진정한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사회적 시선이 또 다른 가해가 된다”고 지적했다.
조 대표는 성폭력 범죄의 보호법익이 ‘성적 자기결정권’임에도 현행 형법은 폭행·협박 여부를 중심으로 유무죄를 판단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현장에서는 폭행이나 협박이 드러나지 않는 회색 지대 사건이 많아 피해 사실이 쉽게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
아울러 조 대표는 “성폭력 피해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아니라 치유와 회복의 과정”이라며 “전문가와 상담자가 피해자의 목소리를 믿고 지지하며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